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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 혁명가독서가열전 56. 칼 마르크스
이일두 기자  |  bookpluslif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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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승인 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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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의 마르크스.

인류 문명사의 변혁을 몰고 온 3대 패러다임 전환을 가리켜 흔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꼽는다. 마르크스 사회주의는 20세기를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지만, 오늘날에는 실패한 이론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인간의 삶이 자본(돈)에 의해 소외당하자, 세상은 사회주의가 추구하려 했던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하였지만, 정치를 통해 이를 실천하려 한 여느 혁명가들과는 다르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고, 젊은 시절 방황을 하기도 했고, 평생 가난과 고독의 굴레에 갇힌 채 오로지 책에만 묻혀 살았다. 그는 단벌옷이 전당포에 잡혀 외출을 못 할 정도로 빈곤했고, 빚 때문에 파산의 문턱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런 삶 속에서도 마르크스는 인류의 평등한 삶을 위해 사회주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는 외로웠고, 사회와 단절된 채 오로지 도서관에 묻혀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자 했다. 그는 돈에 의해 차별받는 세상의 방식을 뜯어고치기 위해 책에서 세상의 모든 지혜를 구하였다. 그는 그렇게 책에서 읽은 이론과 사상들을 재구성하여 행복한 세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방황하던 철학 중독자
칼 마르크스(1818~1883)는 독일 트리어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르크스는 17세 때 고교를 졸업했고, 같은 해에 본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술집에 들락거리며 자주 술을 마셨고, 패싸움과 결투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런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대학 안에 있는 학생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낭비벽 때문에 빚을 지기도 했다. 그런 생활은 평생 그의 삶을 따라다녔다. 그런 생활 중에도 마르크스는 괴테와 하이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생시몽 등의 책을 읽었고, 대학에서는 헤겔의 《논리학》 《법철학 강요》 등에 빠져들었다.

그 후,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집안의 기대와 달리 법학보다 철학에 몰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연구로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 시절 마르크스가 독서하고 사색하는 일에 전념하자, 그의 아버지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아들이 철학 중독자가 되어 사회생활과 단절되는 것을 무던히도 걱정하였다. 이 시절에는 케네의 《경제표》 리카아도의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등의 경제학 독서에 몰두했다.

   
▲ 마르크스와 ‘진실게임’을 한 그의 장녀와 차녀.

그는 대학 졸업 후 1842년에 <라인 신문> 편집장이 되었다. 그때부터 마르크스는 사회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되었다. <라인 신문>은 라인 지방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발행한 신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신문을 통해 귀족들의 특권을 비판하였다. 그 논조가 너무 신랄했기 때문에 결국 발행 6개월 만에 신문은 폐간되고 마르크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는 파리로 망명하고 말았다.

도서관에서 보낸 30여 년
마르크스가 망명한 프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등의 성공과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때 마르크스는 독일의 망명자들이 발행한 신문에 노동자를 옹호하는 글을 싣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결혼했고, 신혼여행에 수십 권의 책을 싸 들고 갈 정도로 독서에 심취했다. 당시 가져간 책 중에는 루소의 《에밀》과 《민약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 정부는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그를 추방했고, 브뤼셀로 이주했던 마르크스는 1848년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독일로 돌아와 혁명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며,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혁명이 실패하자 다시 추방령이 내려졌고, 마르크스는 어쩔 수 없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이후, 마르크스는 다시는 독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마르크스의 나이 서른이 넘었다.

그렇게 쫓겨온 영국이지만, 그곳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새로운 신천지를 만나게 된다. 그 신천지는 바로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안의 도서관이었다. 책을 포함한 모든 자료 이용이 무료였던 도서관은 책을 좋아한 마르크스에게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집필을 하면서 무려 그의 반평생 동안인 34년을 보내게 된다. 영국박물관 도서관에 비치된 모든 책을 읽고자 했다. 그곳에서 그의 역작인 《자본론》도 탄생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독서가
마르크스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읽기에 빠져 있었다. 1860년대 중반 마르크스의 딸 셋이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놀이의 일종인 ‘진실게임’을 하였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평생에 걸쳐 가장 좋아하는 일이 ‘책 속에 파묻히기’라고 하였다. 그만큼 그에게 독서는 존재 이유, 그 자체였다.

이때 마르크스는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을 묻자,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는 말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요인에 의해 사회생활이 결정된다는 점과 역사에서 계급투쟁이 갖는 의의에 주목했다. 게다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높임으로써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대항해 나갈 것을 역설했다. 여기서 공상적 사회주의를 넘어 과학적 사회주의를 탄생케 한 독서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비판적으로 회의하고, 책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갈망한 욕심 많은 독서가였다.

 


마르크스의 실수와 공로

 

마르크스를 가리켜 역사 결정론자라고도 한다. 여기서 역사 결정론이란, 어떤 현상이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가 아닌 인과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 같은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무산계급의 혁명으로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가 주장한 이론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한 1848년은 유럽이 초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혁명기였다. 마르크스는 이때의 초기 자본주의 모습을 접하면서, 당시의 사회상이 자본에 의해 노동자들이 소외당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조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욕심 많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잉여가치를 얻는다고 했다. 노동자는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노동 시간을 조정당한다고 했다. 그런 속임수가 가능한 이유는 자본가가 토지, 공장 등의 생산수단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그렇게 생산된 상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노동에 감춰진 일종의 십일조까지 거두어들여서 마치 흡혈귀처럼 이익을 챙긴다고도 했다. 그렇게 자본가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스스로 노동자들의 혁명을 부르는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1871년 3월 28일부터 5월 28일 사이에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인 파리코뮌이 들어선 뒤에, 노동 시간이 줄고 임금이 나아지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것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내용과 달리, 자본가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자본가들은 이윤을 줄이고 기술발전을 꾀해서 프롤레타리아 고객을 새롭게 유치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불러오지 않았다. 즉, 마르크스는 오늘날의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시대처럼 노동계급이 부르주아가 되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가 이렇게 평등한 삶을 주창하면서 인간적인 사회를 구현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보다는 더 공평하고 더 연대감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은 비록 사회주의는 실패했더라도 마르크스의 공헌으로 볼 수 있다.

 


‘자본론’을 다 읽은 사람이 있을까?

 

아홉 살 되는 윌리엄 우드는 ‘노동하기 시작한 것은 만 7살 10개월 되던 때였다.’ 그는 처음부터 그릇 만드는 틀을 날랐다(즉, 그릇 만드는 틀에 올려진 완성된 제품을 건조실로 운반하고, 빈 틀을 가지고 되돌아오는 일을 하였다). 그는 일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매일 아침 6시에 와서 저녁 9시쯤에 일을 끝마치곤 하였다. “저는 1주일에 6일 동안 매일 저녁 9시까지 일합니다. 나는 최근 7, 8주일 동안을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와 같이 일곱 살 난 아이가 15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12살 소년 머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그릇 만드는 틀을 운반하며 녹로를 돌립니다. 내가 일하러 오는 것은 아침 6시인데, 4시에 올 때도 있습니다. 나는 어젯밤 밤을 새워 오늘 아침 6시까지 일하였습니다. 그저께 밤부터 자지 못했습니다. 어젯밤은 나와 함께 8. 9명의 다른 소년들도 밤을 새워 일하였습니다. 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오늘 아침에도 모두 왔습니다. 나는 1주일에 3실링 6펜스를 받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일했고 그 이상은 받지 못합니다. 먼저 주일에 나는 이틀 밤을 새워 일하였습니다.”
- 《자본론 1》 제10장 노동일
제3절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 p309에서 인용

   
▲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제1권 1867년 출간)은 여러나라의 다양한 언어로 출판되었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당시 시대상은 산업혁명 이후 초기 자본주의가 지닌 빈부격차가 이처럼 심했다.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자본주의 모순을 파헤친 《자본론》은 공산주의자들의 경전과도 같았다. 《자본론》은 출간 이후 시대를 막론하고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지금도 서울대를 비롯하여 전 세계 주요 대학들은 독서 목록에서 필독서로 읽기를 권장하는 대표적인 책이다.

《자본론》은 총 2,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며, 초기 산업사회의 암울한 사회상을 묘사했고, 날카로운 경제 이론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담고 있다. 마르크스는 무려 20년이나 걸려 《자본론》을 집필했지만, 1867년에 출간된 1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의 생전에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다. 마르크스의 유일한 친구인 엥겔스가 그의 집필을 이어받아 2권(1885년)과 3권(1894년)을 출간했다. 4권은 1910년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자본론》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처럼 누구라도 필독서로 추천하지만, 사실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2007년 세계 금융위기가 몰아치자, 저렴한 포켓판 《자본론》이 다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만화 《자본론》이 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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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윤
좋은글 잘봤습니다
(2017-03-04 18:56:12)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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