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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유감
조성일 편집주간  |  pundit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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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승인 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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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면 스웨덴 한림원으로 목을 쭈욱 빼는 사람들이 있다. 독자나 기자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이들만큼 절실한 눈빛을 발산하지는 않는다. 문학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들 얘기인데, 대박을 보장하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수상작가의 작품들이 상당수 번역돼 있거니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저작권이 강력하게 발동되고 있어서 아무나 번역해 출간할 수 없기에 예전에 비하면 ‘낭만적 긴장감’이 거의 없다. 저작권을 따지지 않던 시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은 곧 출판사들의 100미터 경주가 시작되는 신호탄이 된다. 번역의 질 따위는 상관없다. 오직 누가 먼저 번역서를 내느냐. 그것만이 최우선 가치였다. 그러다 보니 전공이나 전문성 따윈 고려대상이 아니다. 수상작가의 작품이 사용한 언어만 할 줄 알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확보할 수 있으면 최상이었다. 해당 작가를 연구하는 교수를 확보하면 행운이다. 이 교수를 섭외한다는 것은 그 작품을 번역할 수 있는 다수의 대학원생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는 여관을 잡아놓고 책을 확보한 번역자 수만큼 찢어(나눠) 번역을 시킨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만큼이나 저만큼 지난 이야기지만 노벨문학상은 언제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곤 했었다. 이런 점에서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수상자가 대중가수인 밥 딜런 (Bob Dylan, 75, 본명 Robert Allen Zimmerman)이라는 것부터가 화제다. 의외성. 그가 후보자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라는데 딴 소리를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지난해 수상자 벨라루스 기자 출신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상을 받았던 의외성 정도로는 그의 수상을 받아들이기에는 함량미달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테오도어 몸젠이나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독일), 앙리 베르그송(프랑스), 버드란트 러셀(영국), 심지어 정치가 원스턴 처칠이 수상했던 파격성을 미리 기억하고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밥 딜런의 수상 역시 그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니까. 노벨문학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이번호 ‘이너뷰’에서 만난 소설가 장강명이 내린 품평이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노벨문학상은 탁월한 이벤트다!”

이런 파격성은 수상 사실을 전해야 하는 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만 해도 대학 다닐 때 그의 노래 <Don't Thing Twice It's All Right>를 흥얼거렸던 추억이 있어서 그나마 그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젊은 문학담당 기자에게 있어 그는 결코 전설이 아니었다. 좀 괴짜 같은 미국의 대중가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채워야 할 신문의 지면은 초등학생 선수들이 뛰어야 할 상암축구장이었다.

더욱이 수상 이유가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 것이라는데, ‘시’라기보다 ‘시적 표현’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언론들은 노랫말의 의미를 곱씹고, 또 읽는 시가 아니라 듣는 시를 썼다고, 꿈보다 해몽을 더 그럴 듯하게 내놓긴 했지만, 정말 쓸거리가 없어 마른 행주 짜듯 한 티가 도드라져 보였다. 문학이라 하면 곧바로 ‘책’이 연상되어 혹 하는 마음에 그가 쓴 책을 찾아봐도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원제 Chronicles)이 유일하다. 아, 자서전도 수상한 적 있으니, 앞에서 이름을 거론했던 윈스턴 처칠.

황당하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이는 출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수상을 족집게처럼 맞춘 영국의 배팅업체 래드브록스의 예상에 맞춰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나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 시리아의 아도니스 등의 수상 가능성을 기대하며 책을 서둘러 펴내며 특수를 기대했건만, 밥 딜런이 직접 쓴 자서전과 그를 다룬 두어 권 해서 고작 서너 권으로 수상자 특별 전시 코너를 꾸려야 하는 빈약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대신 같은 매장(대형서점) 안에서 팔고 있는 음반이라도 불티나게 잘 팔린다니 그것으로 위안 삼아야 하나.

글쎄, 수상 소식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밥 딜런이나, 자기들 기획대로 이벤트를 벌려놓고도 대답 없는 수상자에게 오만 무례하다고 질책하는 스웨덴 한림원이나 다 꼴불견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밥 딜런이 뒤늦게 가문의 영광이라며 수상식에 참가하겠다는 발표가 나와 그나마 다행일까. 올 노벨문학상도 이래저래 뒷말만 많이 만들어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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