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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만큼 책을 사랑한 일편단심 독서가독서가열전57. 신채호
이일두 기자  |  hanuril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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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승인 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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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년기의 단재 선생.

저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빛을 보게. 내 비록 타국의 감옥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나는 이곳에서 한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네. …… 하루는 교도관이 타국의 언어로 내게 물었다네. “곧 죽을 몸인데 책을 왜 읽습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미소를 지었다네. 그러는 나를 그 교도관은 의아하게 쳐다보더군. 그래서 나는 말했다네. “우리의 미래는 교육과 독서에 있소. 쉬지 않고 읽고 써야만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거요.” …….

이 이야기는 죽음을 며칠 앞둔 단재 신채호(1880~1936)가 감옥에서 친구에게 쓴 편지다. 이처럼 단재는 역경 속에서도 독서를 포기하지 않았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이고, 교육자였던 단재는 독립운동의 그 험난한 역정 속에서도 독서만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삶을 헌신했다. 그는 개인이든 국가든 오직 읽고 쓰는 교육을 통해서만 자강(自强)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단재가 걸어갔던 그 발자취가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등불처럼 세상을 환히 비춘다.

천재였던 어린 시절
단재는 1880년, 가난한 선비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단재의 부모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 산간 밭을 개간하여 겨우 허기를 메우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단재의 부모는 가난하였지만 선비 집안답게 자녀교육을 등한히 하지 않았다. 단재는 이러한 부모 밑에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명심보감》 《고문진보》 등 여러 한문책을 습득해 나갔다.

이어 어린 단재는 할아버지가 낙향하여 새로 문을 연 서당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7세에 《통감》을 익혔으며 13세 때에는 《사서삼경》과 같은 경서를 섭렵하여 통달하였다. 단재는 불과 13, 4세에 과거시험을 볼 때 쓰던 문장과 시부를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그 능력이 뛰어났다.

신채호의 이러한 천재성에 감복한 주변 지식인들의 추천으로 단재는 19세에 수업연한이 3년인 성균관 경학과에 입학하였다. 성균관에 입한 후에도 단재는 새롭게 접한 동서양의 책들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 후, 단재는 1905년, 그의 나이 26세 때 성균관 박사 시험을 통과하여 임명되었다.

   
▲ 신채호의 생가터.

책을 향한 탁월한 집중력
성균관을 졸업한 후에도 독서에 대한 단재의 집념은 여전하였다.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근무하던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소나기를 만났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급히 길가 어느 집 추녀 밑으로 들어갔다. 그런 광경을 보던 집주인이 대문 밖으로 나와 단재에게 집에 들어가 비를 피할 것을 권했다.

마지못해 주인을 따라 그 집 사랑채로 들어간 단재는 방안에 많은 책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중 책 한 권을 집어 든 단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채 밤을 새워 읽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주인에게 인사하고 다시 신문사로 출근했다.

몇 달 뒤, 단재는 그 집이 화재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으로 달려갔다. 주인을 만나자마자, 지난번 자신이 읽었던 그 책이 어찌 되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그 책은 이미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주인의 말을 들은 단재는 안타까워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이후 단재는 기억을 되살려 불타버린 책을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며칠 후 단재는 기적처럼 자신이 읽었던 책과 똑같은 내용의 책을 복원하였다. 이 사례를 통해서 단재가 얼마나 진지하게 책을 읽는 독서가인지 알 수 있다.

자존심 센 책벌레의 영어 공부
중국 망명 시절 단재는 서양 학문에 뛰어난 김규식에게 영어를 배웠다. 하지만 미국 유학파였던 김규식은 영어 발음을 까다롭게 가르쳤다. 이를 참다못한 단재는 춘원 이광수를 찾아가 영어 발음은 필요 없으니 뜻만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 무렵 단재는 ‘이웃’을 뜻하는 ‘neighbour(네이버)’를 자기식대로 ‘네이그흐바우어’라고 읽기도 했다. 그는 영어를 읽으면서도 어려서부터 습관이 된 ‘하여슬람’이라는 한문식 읽기 말을 덧붙이고는 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영문이나 한문이나 글은 다 마찬가지 아니오.”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던 단재는 이때 배운 영어로 《로마제국 흥망사》 《영웅숭배론》 같은 서양 고전을 읽고 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감옥에서도 불타던 독서열
신채호의 독서열은 감옥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단재가 미결수 신분이던 1928년, 조선일보 기자 이관용이 면회를 갔다. 이때 단재는 기자에게 H.G. 웰스의 일본어판 《세계문화사》와 《에스페란토 문전》을 구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최남선에게 부탁한 《윤백호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1930년, 단재는 10년형을 선고받고 중국 뤼순 감옥에 갇혔다.

   
▲ <조선상고사> 등 단재의 저술 작품.

그 후 조선일보 기자 신영우는 단재를 면회하면서, “옥중에서 책을 보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단재는 “노역으로 시간은 없지만 잠깐씩 쉬는 동안에 조금씩이라도 책 보는 데 힘씁니다.”라고 했다.

친일 사학자들이 일제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리 역사를 왜곡할 때, 단재는 감옥에서 틈틈이 독서하며 우리 역사를 연구했던 것이다. 그런 노력으로 신채호는 1931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조선사》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했다. 혹독한 감옥 생활도 불타는 단재의 독서열을 끄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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