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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혼용무도’보다 더한 세상
조성일 기자  |  pundit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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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승인 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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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해마다 이맘 때 이런 글을 쓸 때면 첫 문장에 으레 들어가는 형용사 ‘희망찬’을 쓰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보다 독자들이 더 잘 알 터이다.

그런데 올해를 상징하는 십이간지의 ‘유(酉)’, 즉 닭 또한 지금 ‘처참하다’ 하는 말로도 그 실체를 제대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 이유, 이건 말해야 이해가 될 듯싶다. 조류인플루엔자(AI).
이렇게 올해는 안팎곱사등 신세로 한 해를 시작한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상황이다.

‘혼용무도’는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의 한자성어로,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이르는 ‘혼용(昏庸)’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의 ‘무도(無道)’를 합친 표현이라고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나라의 흥망성쇠를 고민해야 할 엄중한 상황에서 이 일을 너무 가볍게 희화한 거 아니냐고 힐난할지 모르겠으나 굳이 이 표현을 쓰는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속 우울한 감정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아서다)를 상징하는 사자성어가 이보다 더 적절한 게 있을까 싶다.

이 사자성어는, <교수신문>이 해마다 이맘때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골라 발표하는데, 2015년에 이미 채택된 바 있다. 어쩐지 무척 낯익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6년은? 사실 난 올 첫 데스크 칼럼의 소재를 고민하다 <교수신문>이 선정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활용하려고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아뿔싸, 12월 23일쯤 발표한단다. 우리 신문은 22일 아침에 이번 호 윤전기를 돌리는데 말이다.

아, 여기서 손 드는 독자가 있다. 맨 앞 문장 수정하라고. 정유년이 밝은 것이 아니라 밝으려고 한다고. 실제 달보다 한 주(그동안 <책과삶>은 사정상 매월 초에 인쇄하는 관계로 실제 달과 시간적 차이가 많이 나서 이번 1월호부터 매월 셋째 주 목요일을 발행일로 정해 실제 달과 1주일 정도 차이를 두기로 했다) 정도 앞서서 인쇄해야 하는 잡지의 숙명을 양해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교수신문>이 과연 2016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어떤 것을 고를까. 내게는 이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문학담당기자들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교수신문>이 2015년에 골랐던 ‘혼용무도(昏庸無道)’ 이상의 사자성어를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 어디 한 번 골라봐라,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은 놀부 심보가 약간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으니 절대로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만약에’ 라는 단서를 달고 혹 한 번 선정했던 것을 또 선정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 모르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관행도 신기록처럼 깨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 지금 우리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강진이나 초특급 태풍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지진은 본진인지 여진인지 여전히 구분이 안 되고, 태풍의 진로 역시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오직 지진과 태풍만이 안다. 잦아들 기미도 없다. 한 꺼풀이 벗겨지면 또 한 꺼풀이 벗겨지고, 또 또 한 꺼풀, 또 또 또 한 꺼풀…… 그 끝이 과연 어딜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공자왈맹자왈만 되뇌일 수밖에 없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바싹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아무리 혼용무도하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인류가 시작되고 나서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자리에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고 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힘들지만 희망을 노래해보자. 인터뷰 차 만난 윤구병 선생님의 표현처럼 지금처럼 ‘집단지혜’를 발휘하면 이 난국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자, 정유년의 닭은 새해가 밝았다고 홰를 쳤다. 세상의 순리에 따르면서 한 해를 열심히 살다보면 “2017년엔 정말 힘들었는데, 조금이나마 행복했지!”라고 옛 이야기 하며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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