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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삶이 된 전설의 편집자정해렴 현대실학사 대표
조성일 기자  |  pundit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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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승인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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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고 나서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고 해서 바빴어요. 강연도 한 번 했고. 지나치다 싶어서 이젠 그만하려고 했는데….”

   

희수(喜壽, 일흔일곱 살)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책이 삶이 된 사람’ 정해렴 현대실학사 대표가 첫 책을 냈다. 자신의 77세의 삶을 씨줄로, 53년 편집자 삶을 날줄로 삼아 엮은 《편집 교정 반세기》(한울엠플러스).

1964년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하자 외삼촌인 이응백 교수(서울대)가 교사를 권유했지만 말주변이 없어 망설이고 있자 교학사에 한 번 가보라고 해서 갔다가 얼떨결에 시험을 쳤다. 국어는 그럭저럭 썼는데, 편집 문제의 답안은 백지. 그렇지만 그는 채용됐고, 편집자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 3학년 때 외삼촌댁에 기숙하면서 《한글 큰사전》에서 방언을 뽑는 일로 외삼촌의 《한글 맞춤법 사전》 편찬 일을 거들었어요. 이때 교정의 기본을 익힐 수 있었지요.”

교학사에서 1년 남짓 근무하던 정해렴은 당시 문학·인문 출판사로 이름을 드날리던 신구문화사로 옮긴다. 여기서 그는 《현대한국문학전집》 《가람문선》 《한국인명대사전》 《가와바타 야스나리 전집》 《한국현대사》 《대똘스또이전집》 등 제목만 봐도 한국 출판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목록들을 직접 작업했다.

1971년 역시 당대 최고의 출판사 을유문화사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신구문화사로 돌아간 그는 《한용운전집》 《이무영전집》 《신구문고》를 편집한다.
편집자로서 그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1976년부터 시작된 창비(창작과비평사)에 둥지를 틀면서였다.
《역주 목민심서》 《채만식전집》 등 대작들을 선보이던 그의 편집력이 돋보인 것은 《소설 동의보감》이다.

“영업 전략까지 감안하여 2권으로 하자던 편집부의 중론을 설득하여 3권으로 작업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지요.”

그의 편집자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은 ‘정본(定本, 원본과 가장 가깝게 복원한 판본)’ 작업이다. 염상섭의 〈만세전〉, 채만식의 〈태평천하〉, 한설야의 《황혼》, 홍명희의 《임꺽정》의 정본이 그의 손을 거쳤다.

김지하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에게 서슬 퍼런 남산 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게 만들었다. 필화사건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사상범이나 시국사건 주동자도 아니어서 쓸 범죄 사실이 없다고 하자 조사관들은 함께 끌려간 이시영 부장(시인) 진술서를 보여주고는 그대로 쓰라고 했다. 그렇게 곤욕을 치르던 그는 시집과 지형의 포기각서와 출판사 폐업계까지 쓰고 나서야 풀려났다.

“나가려는데, 조사관이 출판사 포기각서는 아무 의미 없다고 귀띔해줬어요.”

그렇게 창비에서 20년을 근무하면서 사장까지 지낸 그는 1997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창비를 떠나 서울 마포 공덕동에 현대실학사를 차려놓고 새로운 편집자, 아니 편역자의 삶을 시작한다.
편집자로서 그가 우선시 하는 원칙, 원문대조를 하면서 저술 못지않은 공부와 노력을 들여 자신의 피와 살이 된 내공으로 실학자들의 저술을 편역하기 시작했다.

“다산은 한중일을 통틀어 당대 제일가는 학자입니다. 학문 수준도 높았지만 사회 개혁하려는 의지가 컸습니다. 최고 석학의 책과 함께 하는 게 행복했습니다.”

현대실학사에 《다산문학선집》 《역주 흠흠신서》 《아방강역고》 《역주 경세유표》 《목민심서정선》 등 다산의 저서 18권을 편역 출간한 것만으로도 그의 다산 사랑이 얼마나 큰가는 짐작하고 남는다.
그는 지금 한국역사인명사전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해방 때까지 역사 평가가 끝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1만 5천 명 정도 망라할 대장정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후배 편집자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편집 체계가 많이 달라졌지만 편집자 정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그걸 명심하고 책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어서는 내게 하나 더 덧붙였다. 인터넷에 있는 한글맞춤법 검사기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불완전명사나 조사, 접미사를 혼돈하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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