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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려고 책으로 태어났나!송인서적 창고에 갇힌 책의 한살이
조성일 기자  |  pundit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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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승인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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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위 서적도매상인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계는 새해벽두부터 아수라장이다. 송인서적 창고에 갇힌 책의 한살이를 통해 출판계의 고질적 문제를 소설적 구성으로 들여다본다.

갇혔어. 꼼짝없이 갇혔어. 최순실이나 김기춘이 갇힌 곳과 다를 바 없는 곳이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송인서적 창고. 많이 춥다. 그런데 외롭지는 않아. 둘러보니 주변에 나와 같은 신세가 40만 권이나 된다네. 내가 이러려고 책으로 나왔나, 자괴감이 깊이 들지만, 난 ‘자괴감 운운’했던 그 사람과는 사정이 달라. 그 사람과 도맷값으로 평가하지 마라. 그는 자신이 그렇게 저지른 것이고 난 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 아닌가.

   

나도 모르게 바뀐 주인님
내가 갇힌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난 처음엔 몰랐어. 아무도 내게 넌 나갈 수 없는 신세야, 라고 말해주질 않았거니와, 주변 동료들도 전해 듣질 못했거든. 이상한 낌새는 있었지. 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아무리 줄었다고 해도 날이 밝으면 한 권 두 권 불려나가거든. 늦잠자다 호출 받는 놈들의 불평 소리가 아침잠 없는 내 귀에 들리곤 했지. 한데 요 며칠 사이에는 아무도 불려 나가지 않았어. 새해라 며칠 쉬는 줄 알았지.

난 아직도 우리 주인님 코도 못 봤어. 아, 맞아, 면회도 안 된데.
그런데 지금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 내 주인이 바뀌었다는 거야. 나를 낳아준 출판사가 아니라 송인서적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새 주인이라는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부모가 이혼할 때도 누구 따라 갈 거냐고 물어보는데. 난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사실 팔려온 게 아니야. 팔아달라고 맡겨진 거야. 송인서적은 내 값을 주인에게 치르지 않았어. 팔려야 그때 가서 주인에게 값을 치르는 위탁판매 방식. 안 팔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야 그냥 출판사에 돌려주면 돼. 유식한 말로 ‘반품’. 애초 송인서적에서 받은 돈이 없으니 우리 출판사는 망가졌든 아니든 책만 돌려받으면 그것으로 셈은 끝. 동네서점도 마찬가지야. 그 많은 책들을 미리 돈 주고 사다가 파는 거 아니야. 일정부분의 잔고를 정하고 있지. 잔고가 뭐냐고? 책을 공급하면 책값을 주는 게 당연한데, 현실은 달라. 일정 금액의 미수금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 금액을 넘으면 넘은 금액만큼 수금해주는 방식이야. 그러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도매상이나 소매상에 일정 부분의 책이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지. 물론 잘난 놈들은 서점에서 미리 돈을 주고 많이 확보해서 팔기도 하지. 이런 걸 ‘매절’이라고 불러.

과욕이 불러온 책의 씨앗
그러고 보니 우리 주인님이 보고 싶다. 내가 나오던 날 정말 기뻐했는데. 이게 책이 될 줄 몰랐다며 저자와 얼싸안았고, 그 애틋한 감정은 막걸리를 불렀고, 막걸리는 노래를 불렀지. 암튼 그때 나도 기분이 좋았어. 대접 받는 느낌.

내가 책으로 잉태된 때가 생각난다. 처음엔 책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지. 저자는 어떤 단체로부터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대. 제목은 “책이란 무엇인가?” 그냥 자신이 갖고 있는 상식만으로 썰을 풀까 고민하던 저자는 ‘두 시간’이란 게 자꾸 마음에 걸렸대. 한 시간은 어떻게든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시간은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그는 인터넷을 비롯해 책 등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고, 뒤지다보니 몰랐던, 그러나 주옥같은 것들이 고구마처럼 줄기에 매달려 끌려 나오더래. 자료 조사를 애초 한두 시간 할 요량이었지만 하루 종일 이어졌고, 강연 준비는 이 많은 자료를 압축해서 만들었대. 강연 결과, 당근이지. 반응이 엄청 좋은 것에 고무된 우리 저자 선생님, 이걸 아예 책으로 내겠다고 선언하고, 그날부터 집필에 착수했어.

그런데 저자는 써내려가면서 이게 책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하는 회의에 수없이 빠졌대. 그러나 중도에서 그만두기엔 지금까지 준비한 자료와 투입한 시간, 그리고 자신의 노동력을 생각하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그 억울함은 집필 에너지를 발산시켰고, 그의 아내는 남편의 집필 의욕을 북돋운다는 명목으로 간식을 사다 날랐다고 해. 낑낑거리기를 1년, 200자 원고지로 1,200여 매 분량의 초고를 썼을 때 그의 배는 남산만 해졌지. 원고를 쓴다는 이유로 운동은 안하면서 간식은 접시까지 먹어치울 태세였으니까.

힘겹게 찾은 출판사
그런데 우리 저자님 책 내주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애먹었어. 유명 작가라면 출판사들이 줄을 서서 원고를 기다리는 상황이니 이런 걱정은 없는데, 우리 저자님은 첫 책이라 출판사에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지. 거기다가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당장 써먹을 지혜를 찾는 독자들의 입맛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초판도 팔기 어렵다는 진단이 내려졌어. 그래도 우리 작가님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100여 군데의 출판사에 이메일로 원고를 보냈고 3군데에서 입질이 왔어.

그런데 세 군데는 조건이 각각이었어. ㄱ사는 판매가 보장되지 않으니 작가가 제작비용 전액을 부담하는, 이른바 자비출판을 하자고 했고, ㄴ사는 초판에 대한 인세는 없고 정가에서 10% 할인된 가격으로 200부를 저자가 사주는 조건을 제시했어. 두 출판사 미팅에서도 거절과 비슷한 결과를 받아든 우리 저자님, 포기하는 것보다는 내는 게 낫다고 ㄴ사의 제안에 조금 끌리긴 했어. 하지만 구세주가 나타났어. ㄷ사. 원고가 너무 좋아 꼭 책을 내고 싶다며 인세는 A급이면 정가의 10%를 주는데, 신인이니까 7% 수준에서 정하고, 계약금 100만 원을 주겠다는 거야. 야호! 뒤돌아볼 필요도, 더 찾아볼 필요도 없었어. 그 자리에서 결정.

초고보다 수정이 더 어려워
계약 뒤풀이의 숙취가 아직 머리를 때리고 있을 즈음 핸드폰이 울렸어. 출판사 사장이었어. 원고를 수정해야 하니까, 그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싶으니 출판사로 나와 달라나. 원고를 넘기면 출판사가 알아서 책으로 만드는 줄 알았던 우리 저자님은 원고 넘긴 걸로 안 되냐, 뭘 고치냐고 물었던 것 같아. 그러자 사장은 논문 투의 이 원고 그대로는 못 실으니 책에 맞는 문법으로 다시 써야 하고 내용도 서로 협의하여 빼고 넣고 해야 한다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편집장과 상의해가며 작업하면 된다고 했대.

작가님은 부스스한 몰골로 출판사로 나갔어. 사장은 출타 중이었고, 그를 맞이한 사람은 자신이 편집장이라는 젊은 여성이었어. 그녀는 원고 뭉치를 앞에 놓았지만 들춰보지는 않고 원고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방통행식으로 말했어. 그가 상의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그녀는 사장님이 이렇게 전달하라고 해서 전하는 것이라고 했대. 작가는 잠시 고민이 됐지. 어제하고 지금하고 완전히 달라진 이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 그렇다고 책을 안 내겠다고 하면 이미 술이 된 계약금을 생돈으로 물어줘야 할 판.

그 이후의 상황은, 수정하는데 들어간 시간이 3개월, 원고량은 1000매, 이렇게 최종 원고가 완성됐다는 점만 말하겠다. 그 고충은 미루어 짐작하길.

사장님 맘대로 정가 매기기
이제 원고는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 들어갔어. 어떤 판형(책 크기)으로 어떤 콘셉트로 책 디자인을 할 것인지에 대해 편집장과 편집자가 머리를 맞대고 정했지만 시원시원한 사장님이 단칼에 지금 모습으로 하라고 지시했어. 편집자는 외부에서 작업하는 디자이너에게 이 콘셉트를 설명하고 인디자인 프로그램으로 빨리 가편집을 해달라고 했고. 일주일 후 도착한 가편집은 편집자가 사진과 텍스트 상황을 봐가며 러프하게 수정하여 다시 디자이너에게 보내지고, 편집자는 수정 파일의 피디에프 버전을 받아 프린트하여 교정 교열에 돌입. 교정 교열은 보통 3교가 기본이고 필요하면 더 늘리기도 해.

출판사에서는 특별히 표지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표지가 판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야. 아울러 표지와 본문 용지는 어떤 것으로 쓸 것인지, 초판으로 몇 부를 인쇄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고, 편집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ISBN(국제표준 도서 번호)을 신청하여 승인을 받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인 책 정가 매기는 작업에 착수. 종이, 인쇄, 제본 등 순수 제작비와 인세, 인건비 등을 감안하여 정가를 정하는 게 일반적인데, 많은 경우 출판사 사장이 즉흥적으로 결정하기 일쑤. 15,000원 할까, 14,800원 할까, 18,000원 할까. 에이 14,800원 하자, 느낌 좋지! 이런 식으로.

그리운 눈빛
나는 이렇게 태어났어. 내 가치는 14,800원. 인쇄를 거쳐 제본을 하면 우리는 일단 출판사가 정해놓은 집합소(창고)로 보내져. 처음에는 출판사 영업자가 주요서점과 새 책을 몇 부씩 맡길지 논의해 놓은 상태에서 그 숫자대로 배본되고 남은 책들은 창고에서 부름을 받을 때까지 지루한 기다림의 삶을 살아.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곧바로 소매서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한 번 더 거쳐. 도매상. 보통 책은 정가의 60~70%(적은 경우도 많은 경우도 있음) 수준으로 공급되는데, 도매상에서는 자기들의 이익 규모(5~10%)를 붙여 소매 서점에 출고해. 나는 바로 송인서적의 부름을 받았고, 소매 서점의 부름을 받을 날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만 흑흑. 못 나간대. 이러다 사람의 손길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길로틴(파쇄)의 희생물이 되는 건 아닌가. 아, 당신들의 눈빛이 그립다,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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