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 > 독서가열전
독서로 역사의 이정표 세운 지식인독서가열전 58. 안정복
이완 편집장  |  hanurilw@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97호] 승인 2017.02.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순암 안정복 선생.

국경을 넘으며 단재는 멀어져 가는 조국 강산을 처연한 눈길로 되돌아보았다. 경황없이 떠나온 북간도를 향한 망명길에 그는 평소 아끼던 책 한 권만 가슴에 품고 집을 나섰다. 단재 신채호가 품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책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이었다.

단재가 《동사강목》을 아꼈던 것은 안정복의 자주적이고 실증적인 사상을 흠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안정복은 수많은 역사책을 참고하여 발해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라고 했고, 그의 사상을 단재가 이어받아 주체사관의 꽃을 피웠다. 이처럼 안정복은 한 권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고, ‘온축(蘊蓄)’ 즉, 차곡차곡 깊이 쌓인 독서의 여력을 기반으로 실증적인 서술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책 읽기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독서에만 매진한 삶의 결과이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를 체계화한 역사가이자 실학자이고 성리학자이기도 한 안정복은 그 어느 명칭보다, 주체적이고 성실한 독서가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그것은 안정복이 개혁군주이자 출중한 독서가였던 정조의 스승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독서가 전부였던 청소년기
안정복(1712~1791)은 작가, 역사가, 실학자, 성리학자로 조선 후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몰락한 양반가의 가난한 집안에서 병약하게 태어난 안정복은 부모를 따라 거처를 여러 번 옮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몸이 약한 그였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했고, 읽은 책에 대한 기억을 잘하였다. 열 살에 《소학》을 읽고 그 내용을 암기할 정도였다.

그의 나이 16세인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남인 대다수가 중앙정계에서 숙청되자, 4대 당파 중 남인에 속했던 가문의 영향으로 그는 일찍이 관직을 단념하고 과거에는 단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다. 그러한 집안 내력으로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으므로 그는 스승 없이 독서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였지만, 경학은 물론, 역사·천문·지리·의약 등에 걸쳐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한때 종중 땅을 팔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생활이 곤궁했다. 그 때문에 안정복은 팔아버린 종답을 다시 찾기 위해 노비와 함께 산막을 치고 숯을 구워 팔기까지 하였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안정복의 손에서는 책이 떠난 날이 없었다.

위대한 스승과 만남
안정복의 나이 스물다섯에 그의 집안은 경기도 광주에 정착하였다. 이 일은 그의 삶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광주에는 대학자 성호 이익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어느 정도 독서 이력이 쌓인 안정복은 성호 이익을 찾아가 체계적으로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안정복은 일생 동안 성호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그의 학풍을 계승한 인물이 되었다.

   
▲ 고조선부터 고려말까지 다룬 역사책《동사강목》.

하지만 안정복이 무조건 스승의 뒤만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이익은 본래 주자의 학설을 신봉하며 실천에 힘쓸 뿐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를 즐기지 않았지만, 안정복은 스승과 달리 독서를 통해 새로운 것을 익히고 실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에 대한 인식은 스승의 주체적 사관을 받아들여 계승하였다. 이 무렵부터 안정복은 《사서삼경》은 수천 번씩 읽었고, 《근사록》 《성리대전》과 같은 책은 평생 동안 읽었다.

베껴 적으며 깊이 읽기
조선 후기 사회 환경에서는 웬만한 재력가나 고관대작이 아니라면 많은 책을 소유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이 귀한 당시 지식인들이 책을 손쉽게 가질 방법은 베껴서 쓰는 것이었다. 안정복 역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직접 베껴 적은 뒤 책을 만들곤 했다. 그런 책 중에 대표적인 저술이 여러 책을 발췌하여 백과사전식으로 편집한 《잡동산이(雜同散異)》이다. 이 ‘잡동산이’가 오늘날 ‘잡동사니’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그의 시(詩) 「저서롱(著書籠)」에는 ‘… 경사와 그리고 자집까지/ 대강 갖출 건 갖추어두고/ 낱낱이 질긴 종이로 된 가의를/ 애를 써가며 손수 다 꿰맸지…’라고 당시 책을 베껴서 만들던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안정복은 고전들을 옮겨 적으며 꼼꼼하게 독서를 이어갔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읽었던 책은 그의 내면 깊숙이 쌓여, 그의 저술 활동의 근원을 이루는 비옥한 토양이 돼주었다.

역사의 이정표가 된 독서가
안정복의 성실한 독서 편력이 잘 나타난 저서가 《동사강목》이다. 그는 《동사강목》을 쓰기 위해 수많은 역사책을 읽었다. 그 책 중에는 기전체 형식의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이 있고,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편년체 형식의 《동국통감》,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강(綱), 목(目)으로 기록한 《여사제강》과 《동사회강》 등의 강목체 역사책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책 중 안정복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읽은 책은 주자의 《자치통감강목》이었다. 그는 이 책을 모델 삼아 《동사강목》을 편찬하였다.

   
▲ 순암의 묘소.

안정복은 발해사를 최초로 우리의 역사로 본 인물이다. 이러한 경향은 유득공의 《발해고》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로 이어졌다. 한편, 그의 저서 중 《임관정요》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안정복은 체계적이고 폭넓은 독서 이력을 기반으로 역사가이자 실학자이고 성리학자로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독서가였다.

 

이완 편집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48길 25 리슈빌 B101호 책과삶  |  대표전화 : 02)749-4612  |  팩스 : 02)749-4614
발행인·편집인 : 이완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완
Copyright © 2017 독서신문 책과삶.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