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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數) 이해하며 맞이한 문명의 새벽4. (1) 문명 기원의 역사②
이완 편집장  |  hanuril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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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승인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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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면에서 특별한 존재일까?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기는 인간은, 언제부터인지 보고 듣고 느끼는 무질서한 사건과 사물을 분류해서 체계화하는 능력을 지니게 됐다. 인간은 이런 능력으로 사건과 사물의 패턴을 알아채면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생각을 탄생시켰다.

생각을 통하여 ‘서로 달라 보이는 것들이 같을 수 있다’는 깨달음 즉, 패턴인식을 얻기 시작하면서 문명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명의 새벽은 바로 ‘수(數)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수학 기호 ‘=’이 좌우가 ‘서로 달라 보이는 것들이 실제는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패턴을 인식하는 인간의 추상적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버트런드 러셀은 “인류는 돌 두 개와 양 두 마리에서 2라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그리고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했다. 러셀의 말처럼 인간은 아무런 상관없는 돌과 양을 보고 2를 추상화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구상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구상과 설계로 문명의 새벽을 연 인류는 도구를 발명하고, 밤하늘의 별자리와 계절의 변화 등을 추상화함으로써 문명의 새벽을 맞이했다.

수(數)를 헤아린 역사
인류가 수(數)를 헤아리기 시작한 것은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수(數) 사용 흔적은 체코에서 발견된 약 2만~3만 5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늑대 뼈에 새겨진 55개의 선’이다. 이 뼈에 새겨진 선은 30개가 5개씩 묶여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일정한 진법이 쓰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에서 발굴된 ‘비비의 종아리뼈’란 이름의 유물에는 기원전 3만5천 년 경에 누군가 그어놓은 선명한 선이 29개 남아 있다. 이 선은 오늘날까지도 나미비아에서 시간 흐름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는 ‘날짜 막대’의 원형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도 콩고 에드워즈 호숫가에서 발견된 기원전 2만 년 전의 ‘이샹고의 뼈’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달의 주기 변화를 기록한 수(數)에 대한 표시가 발견되기도 했다.

초기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수(數)를 헤아린 인류의 추상적 능력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오늘날 고등수학의 기초가 되는 방정식이 이미 고대의 기록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이미 방정식은 고대에서도 생활의 도구로써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에 쓰인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일차방정식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고, 동양에서는 기원전 중국 한나라 때 쓰인 《구장산술》에서 다양한 방정식이 기록되어 전해진다. 특히 《구장산술》 제8장 ‘방정(方程)’에는 연립방정식 18문제가 수록되어있는데, 여기서 ‘방정식(方程式)’이라는 용어가 유래하였다.

석기 시대를 주도한 학문
석기 시대를 처음 나눈 사람은 영국의 고고학자 존 러벅이다. 그는 《선사 시대》에서 석기 시대를 석기를 다듬는 방법에 따라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누었다. 러벅은 《선사 시대》에서 신·구석기 사이를 ‘중석기 시대’라고 불렀다. 중석기 시대는 빙하가 후퇴하여 기후가 온난해져 식물이 잘 자라고, 동물도 증가하여 인류가 채집과 수렵으로 먹을 것을 획득하기가 쉬워졌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 때문에 고든 차일드가 《유럽의 새벽》에서 널리 알려 유명해진 중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이 획기적인 발전을 하였다.

   
▲ 체코에서 발견된 ‘늑대 뼈에 새겨진 55개의 선’(위)과 콩고 에드워즈 호숫가에서 발견된 ‘이샹고의 뼈’.

현재 남아 있는 ‘이샹고의 뼈’와 같은 수(數)를 기록한 유물들의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2만~3만 5천 년 전이라면 후기 구석기 시대와 초기 중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이 무렵은 수렵 및 채집 경제를 중심으로 한 원시 공동체 사회이다. 당시 셈을 한다는 것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수렵 채취한 식량을 나눈다거나, 가축이나 짐승 무리의 크기를 알 필요가 대두하였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소개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율리시스에 의해 장님이 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는 자신의 양을 관리하기 위하여 동굴 입구에서 양들이 나갈 때마다 작은 돌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수(數)를 헤아리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 이전의 시대에서는 셈을 하기 위해 쓰인 도구들이 뼈에 새긴 셈 막대나 조약돌 등이었다. 결국, 석기 시대에 인간의 삶을 주도한 학문은 셈법(수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명 여명기의 셈법
인류가 수(數)를 헤아리거나 셈을 할 때 숫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짧은 약 2~3만 년 전의 일이다. 우주 여행을 시도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호주의 원주민 왈피리 부족은 셈을 할 때 사용하는 수(數)에 대한 언어는 “하나, 둘, 많다”가 전부이다. 멜버른 대학 언어연구소에 따르면, 3만여 년 동안 왜래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같은 부족끼리만 자급자족 생활을 해 온 왈피리 부족은 숫자 ‘3’ 이상의 수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1960년 콩고에서 발견된 약 2만 년 전의 뼈에 새겨진 선들을 통해 이미 인류는 선사 시대부터 수학 기호를 이용해 셈법을 발달시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은 당시 자연환경의 변화로 풍부한 수확물을 얻게 되자, 남은 생산물을 정확히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숫자를 고안해 냈다. ‘작은 고깔 모양의 조각=숫자 1’처럼 식량의 수만큼 만들어진 조각을 활용하면서 더하고 빼는 셈법을 쉽게 활용하였다. 그런데 헤아려야 할 생산물이 점점 많아지자 ‘묶음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조각=10개 묶음 하나’처럼 밀을 수확한 짚단 14개는 작은 동그라미 조각 1개와 작은 고깔 조각 4개로 나타냈다.

   
 

그렇게 인류는 문명 여명기에도 자연스럽게 ‘진법’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진법의 개념은 마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거인 폴리페모스가 동굴에서 양들이 나갈 때마다 작은 돌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는 방법처럼 추상적 수사(數司)의 발견 이전에 이미 ‘일대일 대응’이라는 셈법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문명의 발전에 따라 거대 권력이 발생하면서 셈법의 발전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문명의 견인차 수(數)
《오디세이아》에서 거인 폴리페모스의 셈법인 1:1 대응에 의한 방법이 양의 마릿수를 관리하거나 간단한 셈을 하는 데는 적절하였지만, 수(數)의 개념으로 정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인류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돌 2개와 양 2마리 사이에 공통되는 수학적 속성이 ‘2’라는 것을 결국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응용력이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추상화의 능력인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상관없는 돌과 양 사이에서 2를 추상화함으로써 수(數)에 대한 개념도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에서는 10진법에 기초해서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에 해당하는 기호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 후, 기원전 500년경 로마에서는 1과 5의 자릿수가 달라지는 데 따라 새로운 기호인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Ⅸ’가 만들어졌다. 이어서 15세기 말경 인도의 알파벳으로부터 진화한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새로운 수(數)의 기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이 숫자를 유럽에 전파하고 유럽인들은 이 숫자를 조금씩 고쳐서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일명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는 ‘1, 2, 3, 4, 5, 6, 7, 8, 9, 0’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인류의 삶과 함께 발전해온 수(數)는 그 기본을 ‘이치를 따지는 것(論理)’에 두고 있고, 이 이치를 따지는 능력은 모든 지적 대상에 체계를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인문·사회학은 수학의 영향으로 인문과학·사회과학으로 진화했다. 문명의 새벽을 연 수학이 고대 그리스 이래 ‘학문’이라는 뜻으로도 여겨져 왔다. 한편 동양에서도 교양인의 필수 지식인 육예(六藝)에서도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하나로서 수학을 중시했다. 이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학은 인류 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줄곧 진화를 거듭해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문명 사회를 유지하는 중심 구실을 할 것이다.

 


인도-아라비아 숫자의 진화

‘1, 2, 3 … 9, 0’을 가리켜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지만, 사실 이 숫자는 인도가 원산지다. 인도의 숫자가 이슬람 세계에 소개되고, 다시 유럽으로 전파되기까지 아라비아인들은 이 숫자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 공용어인이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아라비아 숫자’로 불러야 정확한 표현이다.

650년경 시리아의 기독교 주교인 세복트의 글에 1서부터 9까지 9개의 인도 숫자가 처음 기록되었다. 그 후, 825년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가 쓴 《인도 숫자를 이용한 계산법》이란 책 속에 인도 숫자가 다시 등장함으로써 이슬람 세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이슬람 사람들은 숫자를 표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인도 숫자인 0에서 9까지 표기법을 도입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인도-아라비아 숫자’ 체계는 1,000년경 에스파냐의 무어 족이 유럽으로 가져갔고,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가 1202년 발간한 《주산서(珠算書)》를 통해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럽에 도입된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16세기경 세계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세계 유일한 공용어로 쓰이는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간편한 사용법 때문에 점점 진화하면서 오늘날의 수(數)의 기호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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