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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표 현대사학사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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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승인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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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평 |

낯설다. 역사학자 임지현(서강대)이 “내 자신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 밝힌 그의 책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부제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ego history)’에 들어있는 ‘에고’라는 용어 말이다. 역사라 함은 공동체 모두가 기억하는, 또는 기억해야 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이라는 교과서적 상식을 배반하는 ‘에고 히스토리’라니. ‘에고’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후설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그런 난해한 의미는 아닐 테지만, 그냥 단순하게 개인적인 ‘나’로만 이해하려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내 자아 역시 역사의 구성물이다.”는 임지현의 진술을 접하고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떠올랐다. 유시민이 개인이지만 곧 역사를 만드는 주체였던 적이 있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아닌 남이 써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역사는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명제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임지현의 책은 유시민의 책과 그 궤를 달리한다는 건 첫 장을 읽어보고 단박에 알아차렸다. 굳이 변명삼아 그의 책을 내 식대로 규정한다면 ‘임지현 표 현대사학사’가 아닐까.

임지현은, 알다시피, 매우 도발적인 역사학자이다. 20세기를 끝내는 그 무렵에 느닷없는 화두,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던졌다. 이 화두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 논쟁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성역과도 같았던 민족주의 담론에 균열을 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냐는 거센 비판은 미래지향적 성찰로 나아가긴 했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임지현은 연이어 도발적 논쟁을 일으켰다. ‘일상적 파시즘’ ‘합의독재’ ‘대중독재’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주제가 아니었다. 찌르는 창을 막아내려는 그의 방패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니 애써 외면해왔던 것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을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런 도발적 문제제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가 던지는 화두를 접하노라면 우리들의 허를 찌르는 ‘감각’에 놀랐던 적이 많았다. 역사학자도 감각적일 수 있구나, 하고 부러워하는 지식인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그런 비밀병기들이 어떻게 사유되고 생겨났는지를 고백했다. 유시민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영업기밀’을 털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임지현이 만든 역사’에 대한 성찰과 ‘임지현을 만든 역사’에 대한 분석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역사’라 할 수 있다. 역사적 행위자라 할 수 있는 역사가(역사학자)가 역사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참여해온 지성사적 고찰과 역사 지식의 탐구과정에서 형성된 역사학자 임지현의 모습.

학창 시절 지하서클에서 활동하고, 또 데모를 했지만 여느 운동가들과 달리 ‘현장’ 대신 ‘대학원’을 택해 역사학도의 길을 걷게 된 임지현은 이 책에서 가족사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박헌영, 김단야와 함께 조선노동당 창건 트로이카 중 한 명인 임원근이 그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 그럼에도 이 ‘빨갱이’ 가족이 연좌제에서 비껴날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 외사촌으로 김종필 후임으로 중앙정보부장이 된 ‘후암동 할아버지’ 김재춘 덕분이었다는 것.

혹 이런 이유로, 또는 아버지의 실업으로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겪게 되는 계급적 위화감 때문에 좌파학자가 되었다는 식의 ‘상투적 플롯’에 그는 반기를 든다. 그는 독일 사회학자 만하임(Karl Mannheim)의 정의로 대답을 대신한다. “지식인의 사상은 그 계급적 기반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사회적 결심의 산물”이라고.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럴 때 그는 얄팍한 계산 아래 다윈을 방패삼아 마르크스를 얘기했다. 마르크스가 다윈에게 《자본론》을 헌정하려 했는데, 다윈이 거부했다는 ‘헌정설’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가설은 “헌정설이 사기”였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이후 그는

“역사적 사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며 “역사가들이 과거를 구성하는 내러티브의 파악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한국사도 외국에서 박사 해야 행세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비웃듯 그는 서양사를 한국에서 연구하며 연구도 실용적으로 해야 한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교수 임용을 앞둔 간이 면접에서 마르크주의자냐는 질문을 받은 임지현은 잠시 고민하다 엉겁결에 ‘맑솔리지스트(Marxologist)’라는 교묘한 언사로 응수한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마르크스 연구자’라는 의미의 낯선 이 단어는 명답이 되었는데, 질문자에겐 “이 문제를 짚었다”는 알리바이요, 그에겐 “생계를 위해 사상을 부정하지 않았으니 됐다”는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무난히(?) 교수가 된 그는 폴란드를 연구대상을 삼았다. 주변부 역사.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120년 지배당하고, 2차 대전 때 600만 명이 죽을 만큼 큰 피해를 입은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에도 협력하는 등 많은 측면에서 한국과 오버랩 됐기 때문이라고.

그는 요즘 동서양의 규격화하는 낡은 생각의 틀을 깨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탈국가주의)’ 역사가로 활동한다. 그는 말한다. 인문학에는 변두리가 없다, 스스로 만든 울타리가 있을 뿐이라고. 서양 연구자로 출발하여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사가 임지현은 자신을 ‘기억활동가’라고 소개한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역사학이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냥 역사학을 떠나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그의 이 자기고백적 ‘역사’책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 편집자 이야기 | 꽃님이(소나무출판사 문지기)

자신의 에고 히스토리(ego-history)를 써보겠노라고 느닷없는 전갈이 온 것은 작년 1월. 그 뒤로 저자는 한 챕터씩 완성될 때마다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다. 흥미진진한 신문연재 소설을 똥줄 타게 기다려 본 경험은 없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 ‘임지현 에고 히스토리’의 첫 독자인 우리는 그의 불규칙한 ‘연재’를 기다리며, 글이 도착할 때마다 탐독을 만끽했다. 식음을 전폐한달지 방바닥을 떼굴떼굴 굴러다닌달지 정도의 애끓는 기다림과 궁금증까지는 아니었을지언정,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들락거릴밖에! 나는 오로지 소나무출판사만을 위한 연재를 받아 보며, 중층적이며 화려한 역설로 그가 선사하는 절묘한 글 읽기에 묵묵히 열광했다.

그의 ‘기억활동’ 이야기는 유달리 작열하는 폭염의 어느 날 갈무리되었다. 집필자의 번민과 글쓰기 노동의 고단함 따위는 내 알 바 아니고, 그때의 아쉬움이란! 그러나 글을 엿가락처럼 늘여 달라거나 추가 꼭지들을 써 달라고 떼를 쓰기엔, 치밀히 직조된 글 전체의 밀도를 외려 해치게 될 일이었다.

이후 여름보다 더 뜨겁고 농밀했던 가을을 관통하며 이 책을 편집했다. 그가 세상에 투척한 독창적인 패러다임들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이며 오랜 독자였던 터라 편집의 즐거움이 한결 쏠쏠했던 듯하다. 더불어, 얼굴에 꽂았던 주삿바늘 자국이야 시간이 메워 주겠지만, 오늘의 이 비루한 역사적 우울의 기억은 문신처럼 남게 되리라는 아득한 불안도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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