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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둥근사각형
조성일 기자  |  pundit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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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승인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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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 〈난세편(難勢篇)〉에 이런 고사가 나온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 때 창(矛)과 방패(盾)를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시장바닥에 좌판을 벌려놓고 자신이 파는 물건이 좋다고 열심히 떠들어댔다. 창은 세상 어떤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다고, 방패는 세상 어떤 창도 다 막을 수 있다고.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한 구경꾼이 장사꾼의 말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창이 어떤 방패도 뚫는다면 그가 파는 방패도 뚫는다는 것이고, 그의 방패가 어떤 창도 다 막아낸다면 그의 창도 막아낸다는 것을 의미할 터. 해서 구경꾼은 장사꾼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을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

이에 말문이 막힌 장사꾼은 줄행랑을 쳤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바로, 국어사전에서는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이라고 뜻풀이하는 ‘모순(矛盾)’이다. 이 모순에다 “말이나 글, 몸짓 따위로 사물이나 사람의 모양을 나타내”는 ‘형용(形容)’이란 낱말을 붙이면 요즘 우리가 빈번하게 접하는 ‘형용모순(形容矛盾)’이란 말이 된다. 다시 사전을 이용해 뜻을 풀이하면 “형용하는 말이 형용을 받는 말과 모순되는 일”. 이를 테면 ‘둥근사각형’ 같은 경우. 사각형이 어떻게 둥글까.

그런데 이 형용모순이라는 영어 단어 역시 생겨난 의미가 한자어와 비슷하다.
형용모순을 영어로 표현하면 ‘oxymoron’이라고 한다. oxymoron은 ‘날카로운/예리한’의 의미의 그리스어 ‘oxus’에서 유래한 ‘oxy’와 ‘멍청한/무딘’의 의미를 지닌 ‘moros’에서 유래한 ‘moron’이 합쳐진 말로, 이 의미에 따라 해석하면 ‘날카로운 무딘’ 혹은 ‘예리한 멍청함’ 정도가 될 것이다. 날카로운 것과 무디다는 것이 서로 호응할 수 없는 관계, 즉 형용모순이다.
형용모순은 문학에서 널리 사용하는 표현 기법의 하나이다.

사이먼앤가펑클의 노래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나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구사한 “달콤한 슬픔(sweet sorrow)”,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어록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이 얼마나 멋진 수사인가.
그런데 이 멋진 표현이 현실생활로 들어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함이 되면서 혼란을 부추기기 십상이다.

한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어떤 분은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설명했다 한다. 그의 이 같은 규정이 철학적 배경을 둔 언설이라고 보기엔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아마도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궁금증이 커지자 그냥 보수주의자라 하면 진보적 성향의 지지자들이 이탈할 것 같고, 진보주의자라 하면 보수주의 성향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계산 하에 이런 형용모순의 언술을 구사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표현은 그가 억지로 만들어내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란다. 이미 다른 정치인이 사용한 바 있고, 또 서양에서는 ‘정치학 용어’로 버젓이 통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상황에 비추어 애매모호한 형용모순의 언설은 되레 꼬인 실타래를 더 꼬이게 만든다.

요즘 우리네 현실을 들여다보면 언설뿐만이 아니다. 행동이나 상황이 온통 형용모순 투성이이다. 뇌물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고, 이쪽은 저쪽을 아는데 저쪽은 이쪽을 모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뭘까. 빨리 둥근사각형이 서로 이치에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둥근 것을 네모나게 만들 것인지, 네모난 것을 둥글게 만들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사각형의 각을 깎거나 둥근 원을 사각지게 하거나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둥근 원’이고 ‘네모난 사각형’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죽어야 산다’는 형용모순은 전혀 모순적이 않다면 나만의 생각일까.조성일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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